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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탐(探)] - 조선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 보부상

  • [2015-08-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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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농공상의 서열로 가장 천대받았으나 조선 후기 상업사에 큰 획을 그었던 보부상. 보부상은 세공품을 파는 봇짐장수인 보상과 쌀·옷감·소금 등 생활 용품을 파는 등짐장수인 부상을 합친 말이다.

보부상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 곳은 바로 그들이 다녔던 옛길.

문경새재와 울진 십이령길은 현재도 그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험난한 길만큼이나 그들의 인생 여정도 녹록치는 않았다.

그래서 그 지역에는 전국을 누볐던 보부상들의 고된 삶이 담긴 노래가 함께 전승되고 있다.

보부상이 조직화, 세력화된 것은 조선시대였다.

보부상들은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별로 조직을 형성했다.

조직은 상거래 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규칙을 세웠다.

한편으로는 의탁할 곳이 없었던 보부상들이 상부상조의 원칙으로 소속감을 강화해 나가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조선 정부에서는 이런 조직력을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 말기에 상리국, 혜상공국, 상무사 등의 관청을 설치해 직접 관리했으며 동학혁명 때는 동학군을 진압하는데 동원한 것이다.

현재까지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무사는 충청도, 경상도 일부 지역에만 남아있다.

상무사를 해체하려던 일본의 압박 속에서 유물을 지키고, 공동 재산을 비축해 조직을 지금껏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충청도의 예덕상무사, 원홍주등6군상무사, 경북의 고령상무사는 보부상 유품을 지키며 그들이 남겼던 교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1년에 한 번씩 제향을 올리고 큰 잔치를 열어 선조 보부상의 공덕을 기린다.

역사의 뒤편에서 천대를 받았지만 상업과 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보부상.

보부상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들의 정신이 우리의 상업사에 남아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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