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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탐(探)] - 왕실 도자기, 조선백자를 꽃피우다

  • [2015-11-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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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수중탐사에서 발견된 마도 4호선 6백여 년 전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배는 최초로 발견된 조선시대 선박이다.

침몰된 선박에서는 접시, 잔, 발 등 일상생활용기로 사용되던 백자가 다량 발견됐다.

조선은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백자를 사용하고 선호하던 국가였다.

화려한 청자를 선호했던 고려와 달리 조선은 왜 희고 맑은 백자를 선호했던 것일까?

유교를 이념으로 청렴함과 결백함을 추구했던 조선.

백자는 조선의 이념을 담기에 충분했다.

무늬가 없는 희고 맑은 순백자를 대표로 사용하는 안료와 무늬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 했던 조선백자.

그러한 백자의 순수함과 예술성.

백자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을 잘 이해했던 조선의 왕실은 국영 백자 가마인 '사옹원 분원 관요'를 설치했는데 이는 백자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었다.

사옹원 분원은 조선의 왕실과 중앙정부에서 필요로 하던 왕실도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1467년, 경기도 광주에 설치됐다.

땔감 조달을 위해 대체로 광주 지역 일대에서 10년 주기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동을 할 때마다 막대한 비용과 주민들의 마찰로 늘 어려움을 겪었고 1752년 지금의 남종면 분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착과 함께 분원이 안정화 되면서 당시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백자가 많이 생산됐다.

특히 왕실도자기를 생산하던 분원은 일반도자기와 달리 내화토로 만든 큰 그릇인 갑발을 사용해 그릇이 불에 직접 닿거나 불순물이 붙지 않도록 했으며 그 품질은 최상급을 자랑했다.

사옹원 분원은 약 420년 간 왕실도자기를 생산하며 조선백자의 산실로 자리 잡았고 그 과정에서 조선백자의 발전을 이끌었다.

최고의 재료와 최상의 방법으로 왕실도자기를 만들며 조선백자를 꽃 피웠던 사옹원 분원.

당시 만들어진 조선백자는 현대까지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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