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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탐(探)] - 가야의 미스터리 2부 - 가야문화, 사라진 역사의 흔적

  • [2015-12-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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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기록이 부족해 주목받지 못했던 나라, 가야.

임나일본부설에 대응하고자 시작됐던 가야사 연구는 오히려 가야의 다양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됐다.

그리고 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와 철기는 가야사의 중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1,500년 전 가야의 유물들은 고대사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3세기 중엽 가야 토기의 출현은 한반도 도자사의 획기적인 변화를 남겼다.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토기를 구워내는 기술을 갖고 전업 도공집단을 통해 토기를 대량으로 생산한 것이다.

또 불을 골고루 전달하고 색상을 고르게 만들고자 가야 소국마다 독창적인 투각 문양을 만들었다.

가야사를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부분은 철기다.

변한 때부터 가야지역은 중국과 왜 사이의 철기 중계무역으로 번창했다.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덩이쇠와 고분군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철제 갑옷은 가야에서 철이 매우 특별했음을 증명한다.

가야는 이러한 선진적 제철 기술을 가지고 김해, 장수 등지에서 대규모 제철소를 만들었으며 한 때 신라를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철기와 토기를 통해 힘을 축적했던 가야는 해외 무역에도 적극 개입한 국제적 국가였다.

가야의 소국들은 자신이 차지한 수운을 적극 활용했다.

전기에는 중국과 왜의 중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후기에는 백제, 왜와의 연합을 통해 신라에 대응했다.

그러나 백제와 왜가 직접 교역하면서 가야의 입지는 점점 축소됐고 한강으로 진출하는 신라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역동적인 문화를 만들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가야. 아직은 물음표로 남겨진 것이 많은 가야사가 바로 잡혀야 온전한 한국 고대사가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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