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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탐(探)] - 길흉화복의 이치가 담긴 풍수 사상

  • [2016-01-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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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의 이치를 찾는 사상인 풍수!

현대인들에게 풍수란 과거 속 문화일 뿐이지만 우리의 역사 속 풍수는 국가와 가문의 번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명당이라는 풍수적 개념이 문헌상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 초. 탈해왕이 초승달 모양의 땅을 속임수로 빼앗았다는 기록 이후로 왕실과 호국을 위해 길지를 찾았던 노력이 종종 보인다.

그러나 살기 좋은 터를 찾기 위한 풍수적 사고는 삼국시대 보다 이전으로 올라간다. 인간이 생존을 고민하면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리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풍수가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 후삼국시대 승려인 도선은 우리나라의 자생풍수를 집대성한 풍수가였다.

도선은 개경을 내기불설의 명당이라며 수도로 추천했으며 개경의 단점을 보완해 국운을 북돋고자 전국에 비보사찰과 비보사탑을 세웠다. 이에 태조는 도선을 국사로 모시며 후손에게 비보풍수를 지키라고 당부했다.

조선시대에도 풍수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양 천도부터 왕궁 건설, 왕릉의 입지 선정에 이르기까지 풍수는 조선왕조의 대소사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양반 가문에서도 선조들에 대한 효를 실천하고 가문의 번영을 위해 음택 풍수를 발전시켰다.과열된 묘지풍수, 명당 찾기는 가문간의 다툼으로 벌어지는 부작용을 나타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은 풍수에 대한 조선인들의 믿음을 악용했다. 민족성을 말살하고 좌절감을 주고자 말뚝을 박고 철도를 놓아 명당의 지맥을 훼손한 것이다.

자연 조건과 삶에 대한 성찰이 빚어낸 사상 풍수.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사상이자 역사로서의 풍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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