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윙배너
광주광역시청
  • 방송프로그램-한국사 探
한국사 探

방송보기

[한국사 탐(探)] - 삼국 문화의 혼재, 중원의 역사

  • [2015-09-24 19:10]
  •            폰트크게  폰트작게   목록
1979년 충주의 한 마을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고려태왕’이란 명문이 새겨진 비석이 발견된 것이다.

충주 고구려비라고 명명된 비석은 고구려 문자왕대에 할아버지인 장수왕의 공을 기념하는 비석인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충주 고구려비의 발견을 계기로 충주를 중심으로 한 청주, 단양 등 충북지역의 고대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북지역의 역사문화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중원(中原)’에 대해 주목했다.

중원은 중원경에서 비롯된 말이다.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당시의 충주지역이었던 국원경을 빼앗았다.

그리고 수도 경주의 편중성을 보완하고자 지방 곳곳에 소경을 세웠는데 충주는 국토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원경이라 한 것이다.

중원지역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한반도의 노른자위였다.

이곳은 남한강을 끼고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남한강은 수운을 따라 한강과 북한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중원의 고갯길들은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으로 연결돼 있었다.

또한 중원은 고대 국가 발전의 척도인 제철산업에 필요한 연료와 원료가 풍부했다.

즉, 중원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수도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4세기 백제, 5세기 고구려, 6세기 신라가 번갈아가며 지배했던 중원지역 역사의 독특성.

그래서 중원지역에서 발굴되고 있는 유적에서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유물들이 순차적으로 발견되는 곳이 많다.

고대에 중원지역이 얼마만큼 중요한 곳이었는지 반증해 주는 것이다.

한 문화권의 중심지가 아니었으나 오히려 삼국의 문화가 혼재해 특별한 중원. 그 역사적 정체성을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목록
  • 주간편성표다운로드
    • 04:50  YTN 24
    • 05:50  YTN 24
    • 06:50  YTN 24
    • 07:55  고속도로 교통정보
    • 08:00  YTN 24
    • 09:40  YTN 24